측우기

측우기

측우기는1441년(세종23년)에 우리나라에서 발명한 세계최초의 우량계이다. 주철 또는 청동으로 만든 원통형의 측우기 본체와 이를 안치하기 위하여 돌로 만든 측우대, 그리고 고인 빗물의 깊이를 재기 위한 자(주척을 사용함)의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의 Benedetto Castelli가 만든 우량계(1639)보다 198년이나 먼저 만들어졌다.

최초에 만들어진(1441)측우기는 깊이가 2자(약 40cm), 지름이 8치(약16cm)로서 측정할때 너무 깊고 무거워서 취급하는데 불편하여, 이듬해(1442)부터는 크기를 약간 줄여서 깊이1자5치(약30cm), 지름7치(약14cm)로 하였고, '측우기'라고 정식으로 명명하였다.

비가 올 때마다 비가 그치면 측우기 속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푼(푼;약2mm)단위 까지 측정해서 보고하게 하였다. 각 도의 감영에서는 측우기를 나누어 주었고, 군 이하의 관청에서는 자기 또는 도기로 만들어 쓰도록 하였다. 자는 주철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지만 군 이하에서는 나무자 또는 대자를 쓰도록 하였다.
즉, 이때에 벌써 전국 적인 우량관측망을 만들었으니 현대적인 기상관측의 개념이 이미 싹트고 있었음을 엿 볼 수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란 때문에 측우제도는 거의 중단되어 버렸다. 영조대(1770)에 와서 다시 이를 부흥시켰으며, 측우기는 1442년의 예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관측하기 시작한 서울의 우량은 현재까지 계속되어 한 장소의 연속관측값으로는 세계최장의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측우기는 1910년경만 해도 경복궁의 관상감과 함흥ㆍ대구ㆍ공주의 감영 등에 4기가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으나, 지금은 1기만이 보존되어 있을뿐이다. 대구감영의 측우기는 1950년까지 서울측우소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6ㆍ25동란에 없어졌고, 공주감영의 금영축우기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일본 기성청에 보관중이었는데 우리문화재반환 운동의 일환으로 1971년에 되돌려 받아 현재 기상청에서 보관중이다. 이것이 지금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진품 측우기로 보물 제5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것은 3단 조립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경은 140mm, 외경은 150mm이고 조립했을 때의 깊이는 315mm, 높이는 320mm, 상단, 중단, 하단 각각의 깊이는 106mm,105mm,103mm이며, 조립할 때 겹치는 부분은 3mm, 무게는6.2kg이다.

영국의 과학박물관에는 석고로 만든 모조품 측우기가 전시되어 있고, 이밖에 놋쇠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품이 몇개 더있다. 측우대는 화강석, 대리석, 일반 석재 등으로 만든 몇기가 보존되어 있다. 기상관측용 측기로는 Galilei의 온도계 발명이 1592년경이므로 우리의 측우기는 이보다 약 151년 이나 앞서 있다. 즉, 측우기의 발명은 세계기상학사에서 관청망기시대로부터 측기시대로 전환하는 시대구분을 150년이나 앞당겨 놓은 중요한 사실인 것이다. 최근에 우리나라보다 중국에 먼저 측우기가 있었다고 하는 주장이 중국으로 부터 나와서 서구학자들도 이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예가 있지만, 이것은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잘못된 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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