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다우지역에 속하며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미작농업을 일찍 부터 발달시켰습니다. 따라서 물관리의 중점은 농업용수의 개발이었으며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축조된 저수지는 벽골제입니다.
벽골제는 [삼국사기]에 신라가 축조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서기330년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이 대립하고 있던 때이미므로 백제의 축조로 보는 것이 사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로 되어 있습니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알려진 저수지로는 김제의 벽골제를 비롯하여 눌제, 황드에, 시제, 제천의 의임지, 대제지, 밀양의 수산제 공검지 영천의 청제등이 있습니다.
6세기 중반부터 8세기말까지의 시기에는 수리관계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ㅡ 이 시기는 3국이 영토 확장을 위해 서로 다투었고 고구려와 백제가 나당 연합세력에 의해 멸망하고 이어 통일신라가 당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던 시기입니다. 이 사실은 국가의 집권적 통치력과 수리사업의 상관관계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수리사업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수리사업의 성쇠는 집권적 통치력의 강약과 비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삼국시대 이래의 수리시설은 골짜기 물이 평지로 흘러나오는 산곡의 입구에 제방을 쌓거나 못이나 늪에 제방을 쌓는 형태, 즉 제언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좁은 개울물을 끌어들여 관개수로 활용했을 터이지만 후대의 방천 혹은 보(천방)와 같이 하천을 다스려서 관개수로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일반화되지 않았습니다. 하천의 수면과 경지의 높이에 차이가 있어 물을 끌어쓰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치수사업은 산미증식계획과 철도, 도로 등 공공시설방호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습니다. 하천개수 공사 실시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1951~1928년까지 14년 간에 걸쳐 대영강, 청천강, 대동강, 재영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용흥강, 성천강, 만경강 등 14개 하천에 대한 1차 조사를 끝내고 이어서 1939년 까지 압록강, 두만강, 안성천, 삽교천,동진강, 형산강, 안변남대천, 성천남대천, 수성천, 금진강 및 서천남대천 등 11개 하천을 조사하였으며 결과적으로 1-2기를 통하여 실시한 하천 조사는 25개 하천에 달하였습니다.
1차 하천조사 사업이 끝날 무렵부터 일제는 식량조달에 있어 홍수피해가 큰 만경강 등 주요하천의 중요부분에 대한 하천개수를 1940년경 거의 매듭을 짓고, 1925~1945년 일제패망때까지 대소 715개 하천에 대한 치수사업을 실시하였습니다. 한편 수력발전을 위한 자원조사도 병행하여 1911~1914년까지 1차조사, 1922-1929년까지 2차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1936년 이후 6개년 사업으로 전력통계 자료조사라는 명목하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대상으로 3차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 당시 전국적으로 조사된 수력지점수는 154개 소이고 포장수력은 643만 6,600Kw에 달하였습니다.
1945.8(해방당시) 현재 일본은 우리나라 전 포장수력의 27.1%에 해당하는 174만 4,800Kw의 수력(29개 지점)을 이미 개발하였고, 공사중인 것이 20.9%에 해당하는 134만6,700Kw(10개지점)로서 전 포장수력자원의 48.0%가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 포장수력자원의 80.0% 이상이 북부지역에 편재해 있었고, 이미 개발이 끝났거나 개발중에 있는 것의 대부분이 북쪽에 있었다는 사살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수력에너지의 북부편재가 급기야는 남농북공정책을 유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광복 후에는 남북간의 심한 전력불균형을 노정하게 되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건설된 수력발전용댐을 살펴보면, 압록강수계에는 부전강에 부전호댐(높이76m, 1929), 장진강에 갈천댐(높이55m,1936), 몌물댐(높이20m,1936),허천강에 연두평댐(높이100m, 1940), 황수원댐(높이60m,1940), 내중리댐(높이43m,1940)및 사초평댐(높이86m,1944)그리고 섬진강수계에는 관개용 댐을 겸한 운암댐(높이26m,1928)등의 콘크리트 중력식댐을 건설하였습니다.
한편 일제치하 식량증산시책으로 토지개량사업이 활발히 추진되어 많은 관개용댐이 건설되었습니다, 관개용댐은 남북한 합하여 256개이고, 그중 높이15m 이상의 댐은 63개이며, 그 가운데 남한이 48개 북한이 15개 이었습니다. 일제치하 남한에 건설된 높이 15m 이상의 관개댐은 콘크리트중력식인 대아 구댐(높이33m,1922)등 87개입니다, 또한 일제치아에서 건설된 생활용수댐은 부산의 법기댐(높이25m, 1939, 콘크리트댐)등 10개에 불과하며, 주로 일본인 거주지를 대상으로 하는 생활용수공급이 목적이었습니다.